http://www.youtube.com/watch?v=PWKYJxNMEe0
같은과거 다른책임
제2차 세계 대전
1.기간 : 1939. 9. 1 ~ 1945.8.15
2.장소 : 유럽,동남아시아,태평양,중동,아프리카,지중해
3.참전국 :
4.이유 : 세계 대공황, 베르사유 조약
5.제2차 세계 대전의 배경
(1) 전체주의 국가들의 대외 침략 :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합병하고,
독일이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는 등 전체주의 국가들의 침략 정책
(2) 독일의 대외 침략
①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 합병 : 독일의 히틀러는 민족 자결의 명분을 내세워 오스
트리아를 합병하고, 이어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하였다.
② 독·소 불가침 조약 체결 :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한 독일이 폴란드 영토의 일부를 요구
하자, 프랑스와 영국이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이에 독일은 소련과 비밀리에 불가침 조
약을 맺었다.
6.발발과 경과
(1) 독일의 폴란드 침공 : 전쟁 준비를 마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여기에 적극 개입함
으로써 제 2 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1939).
(2)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독일에 의해 폴란드는 점령당했으며, 소련도 약속된 몫을 차지하기 위해 폴란드를
공격하고, 핀란드와 발트 3국을 합병하였다.
(3) 독일의 승전 : 전쟁 초기 독일은 폴란드를 점령한 데 이어 프랑스를 비롯하여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대부분의 서부 유럽 국가들을 점령하였다.
(4) 프랑스의 저항 : 영국으로 망명한 드골 장군은 '자유 프랑스'를 결성하고 독일과 전쟁을
계속하였으며, 프랑스 국내에서도 레지스탕스가 조직되어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
(5) 독일의 소련 공격 : 독일은 영국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는 한편, 소련을 침공하였으나, 소
련의 완강한 저항과 혹독한 추위로 패배하였다.
5.결과
(1. 연합군 승리
(2. 국제 연합 창설
(3.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초강대국으로 성장
(4.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사이 냉전으로 치달음
* Keyword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아유슈비츠 수용소
붉은 군대의 병사들이 소비에트 기를 베를린 라이히스타그(제국 의회 의사당)에서 휘날리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독일군의 오스트리아 진입
연합국
미국 영국 자유 프랑스[1] 소비에트 연방 중화민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캐나다 네덜란드 등
추축국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비시 프랑스[2] 핀란드 헝가리 왕국 루마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타이 등
지휘관
연합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오시프 스탈린
윈스턴 처칠
장제스
샤를 드골
추축국
아돌프 히틀러
히로히토
베니토 무솔리니
필리프 페탱
미클로시 호르티
이온 안토네스쿠
피푼 송크람
피해 상황
군인 사망
1400만 명 이상
민간인 사망
3600만 명 이상
총 5000만 명 이상 사망
군인 사망
800만 명 이상
민간인 사망
400만 명 이상
총 1200만 명 이상 사망
제2차 세계 대전(第二次世界大戰)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다.
통상적으로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련군이 1939년 9월 18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하였다고 본다.
한편에선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국 침략,
1939년 3월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한다.
또한 한국과 중국의 일부 학계에서 2차 대전이 일어난 해를 1939년으로 하는 것은 서양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때는 1937년 7월의 중일전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출처 필요].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미국의 원자 폭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끝이 났다.
이 결과로 한국이 독립하였다.
전사자는 약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도 약 4천만 명에 달했다.
전쟁 기간 중 일본은 1937년 중국 침략 때 난징 등에서 대학살을 감행, 겁탈과 방화를 일삼으며
수십만 난징 시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1944년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통해 일본인을 비롯한 조선인, 중국인, 동남아시아인 등 여러 나라의 여성을
종군위안부로 동원하였으며,
독일은 ‘인종 청소’라는 이유로 수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하였다.
또한 미국은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대규모로 폭격한 이른바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15만 명을 살상했고(재일 조선인 포함),
같은 해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약 34만 명을 살상하였으며,
영국과 미국의 공군은 드레스덴과 뮌헨 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 명을 살상하는 등, 전쟁의 피해는 극히 심하였다.
전쟁은 크게 유럽 전선과 중일 전쟁·태평양 전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럽 전선만을 얘기할 경우 히틀러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전쟁의 경과
서방 연합국
소련 측 연합국
추축국, 추축국의 식민지와 비시 프랑스
중립국
유럽 전선
유럽 전선에서 초기에 독일은 전격전의 입안으로 초기에 백색 작전, 황색 작전, 낫베기 작전, 베저 작전을 성공시켜, 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영국 공격을 감행하려 했던 바다사자 작전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패함으로써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이후 나치 독일은 동쪽으로 관심을 돌려 1941년 이탈리아가 점령하지 못한 그리스와 발칸 반도를 먼저 점령하고,
헝가리와 루마니아들를 동맹국으로 삼은 다음, 소련에 대한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하여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승승장구하여 모스크바 직전까지 도달했으나, 거기가 한계였고,
1942년에는 코카서스와 카스피 해 연안의 석유 지원 확보를 위해 남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1942년 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6군이 소련군의 천왕성 작전에 밀려 전멸한 뒤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다시 소련군에 패하면서 기울어 밀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군을 돕기 위해 참전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부족한 병력과 병참 지원에도 불구하고
에르빈 롬멜 장군과 북아프리카 군단(DAK)이 선전하였으나,
1943년 초 튀니지에서 항복하면서 완전히 축출되었고, 이후 연합군은 시실리 및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을 개시했다.
이탈리아 본토로 연합군이 상륙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실각시키고 연합군에 항복한다.
이미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독일은 플란데 작전을 발동, 이탈리아군을 무장 해제하고 베니토 무솔리니를 복귀시킨 후,
사실상 점령군 행세를 하며 연합군을 맞아 싸웠다.
이 이탈리아 전선은 유례없는 산악전으로 진행되면서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한편 독일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1942년부터 소위 대서양 방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수많은 외국 포로가 동원되었으며 프랑스로부터 네덜란드까지 연결되었다.
미군과 영국군은 1942년의 디에프 기습 공격에서 얻은 전훈을 참고하여 오버로드 작전(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으로 연합군은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독일 본토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서부에서는 흔히 벌지 대전투로 불리는 라인 강 수비 작전으로, 전세의 재역전을 노렸으나,
양측에서 압박해 오는 동서 연합군을 막을 힘은 없었다. 결국 5월 1일, 소련군에게 베를린을 점령당하고,
엘베 강의 토르가우에서 미군과 소련군이 만나서 악수하는 와중에 1945년 5월 7일 서부 연합군에 항복하고,
5월 8일에는 동부의 소련군에게 항복하였다.
[아시아와 태평양 전선]
1937년 태평양 전선은 애초에 일본이 국민당 정부의 중국과의 중일 전쟁이 진행 중에 있었고
전쟁 기간 중에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하는 등 교전이 있었다.
1941년 12월 08일 미국 하와이 주의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전쟁은 크게 확대되었고,
일본군의 점령지는 뉴기니 섬과 인도 동부 국경 지대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다.
1942년 04월 18일 일본은 둘리틀 공습으로 주요 도시가 최초로 미국 공군의 공습을 받았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제해권과 제공권에 큰 공백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어진 육전 및
미얀마에서 벌어진 임팔 작전에서도 대패하게 된다.
일본은 한반도의 제주도와 일본 열도의 규슈, 오키나와 섬을 최후의 방어전장으로 설정하고 항전하려 했으나,
미국의 일본 본토 공습으로 방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945년 03월 10일 도쿄 대공습으로 15만이 넘는 일본인이 목숨을 잃었다(재일 조선인 포함).
1945년 06월 23일 수개월간 참혹한 전투가 벌어지며 일본이 끝까지 사수하려 했던 오키나와가 미군에 함락되었으며,
1945년 08월 0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 공격을
08월 09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받자
1945년 08월 15일 항복하였다.(연합군이 본토 상륙을 개시하기 전)
[소련의 태평양 전선 참전]
소련은 일본 본토에 상륙하지는 않았으며, 일본의 점령하고 있던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일본 세력을 축출하였다.
또한 러일 전쟁의 패배로 러시아가 일본에 할양하였던 사할린 섬 남부와 쿠릴 열도를 탈환하였다.
소련의 태평양 전선 참전은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소련 지도부의 사적인 야욕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은 이 전쟁 중, 회담을 통해서 스탈린에게 태평양 전선에 참전하라고 독려하였고,
이는 태평양 전선에서 미국인 희생자를 줄이면서 전쟁을 빨리 끝내려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전략 때문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일을 비롯한 중앙 유럽의 문제가 세계 대전으로 비화되는 두 차례의 경험을 통해,
독일을 고립시키고 소련과 연합하여 세계 질서를 유지해 나가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1950년대 초 마녀 사냥식으로 공산주의자를 색출한 매카시 선풍이 미국을 휩쓸었을 때,
과거 루스벨트 대통령 밑에서 일했던 많은 관료가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 전쟁 때 국무장관을 지낸 딘 애치슨도 조사 대상이 되었다.
외교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은 일본의 전권대사였던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가 1945년 9월 2일 미국 측의 맥아더 원수에 대해
요코하마 근해에 정박한 미 해군 군함 미주리 호의 선상에서 무조건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서 완전히 끝이 났다.
2차 대전 관련 주요 학살 사건
난징 대학살 :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중국인을 학살한 사건. 사건의 실체 및 학살된 피해자 수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유대인 대학살 : 600만 명이 현재 일반적인 설이나, 다른 의견도 있다. 자세한 것은 유대인 대학살 참조.
카틴 숲의 학살 : 소련군이 폴란드 군 장교단을 카틴 숲에서 학살한 사건. 현재 이 사건은 러시아와 폴란드 간의 갈등을 빚고 있다.
말메디 포로 학살 사건 : 전쟁 말기 벨기에 아르덴느 숲의 바스통에서 무장 친위대가 미군 포로 수십 명을 학살했다는 사건.
그러나 전후 조사 과정에서 과장됐음이 드러남.
독일군 포로 학살 : 종전 후, 연합군은 포로로 잡힌 독일군을 강제로 국가 재건 등과 같은 중노동에 투입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프랑스, 소련의 경우), 일부러 의약품과 음식의 제공을 줄여 굶겨 죽이는 만행(蠻行)을 저질렀다(미국의 경우).
사용된 무기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말미암아 무기 개발 금지와 국방군 제한 등을 당하였다.
무기 개발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에 소련에서 비밀리에 하였었다.
독일 무기는 기존의 연합군 무기보다 성능이 좋았는데, 이는 수적인 열세를 피할 수 없는 독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차
독일 국방군
카를
팬저 4호
판터
티거 1
쾨니히스티거
[편집] 붉은 군대
T-34
클리멘트 보로실로프(KV)
이오시프 스탈린(IS)
[편집] 영국 육군
보병전차 1호
처칠
크롬웰
[편집] 미국 육군
셔먼
퍼싱
[편집] 잠수함
U-Boat - 제1차 세계 대전 때에도 사용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때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
[편집] 로켓
V-1 로켓
V-2 로켓
바서팔 - 제2차 세계 대전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는 바람에 사용되지 못함.
[편집] 포
800mm 열차포 도라
K5 열차포
V-3
[편집] 연표
[편집] 1939년
09월 01일 - 독일, 폴란드를 침공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그 순간이다.
09월 03일 -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 선전 포고하다.
09월 17일 - 소련군, 폴란드에 침입.
09월 27일 - 독일, 바르샤바를 점령하다. 그리고 항전에 참여한 폴란드인을 체포하다.
09월 28일 - 독일-소련 경계 설정, 우호 조약으로 폴란드 분할하다. 소련, 핀란드에 영토 통과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11월 30일 - 소련, 핀란드에 침입하다(겨울전쟁). 연합군이 핀란드를 지원함
(스웨덴은 무기를 대여했음. 그러나 다시 중립으로 회귀).
[편집] 1940년
3월 12일 - 겨울전쟁 종료.
4월 9일 - 독일, 덴마크를 점령하고, 노르웨이 침략(베저 작전).
5월 10일 - 영국, 윈스턴 처칠 거국 내각 수립.
5월 11일 - 독일, 프랑스 전역 공격 개시. 베네룩스 공격 개시. 룩셈부르크 항복.
5월 15일 - 네덜란드, 독일에 항복.
5월 28일 - 벨기에, 독일에 항복.
6월 4일 - 영국-프랑스군, 덩케르크 철수 작전 성공.
6월 10일 - 노르웨이, 독일에 항복. 이탈리아, 프랑스에 선전 포고.
6월 14일 - 독일군, 파리 입성.
6월 22일 - 프랑스, 독일에 항복.
7월 11일 - 프랑스에 비시 정권이 수립됨.
7월 19일 - 미국 해군 대확장법 제정.
8월 1일 - 히틀러, 영국 침략 준비 명령(바다사자 작전). 영국 항공전 개시.
8월 6일 - 소련이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불법 점령하다. 이는 발트 3국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된다.
9월 27일 - 독일, 이탈리아, 일본. 추축국에 조인.
11월 20일 - 헝가리, 삼국동맹에 가입.
12월 18일 - 히틀러, 바르바로사 작전 준비 명령.
[편집] 1941년
1월 6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4개의 자유” 연설.
3월 11일 - 미국, 랜드리스 제정.
4월 6일 - 독일, 유고슬라비아 침공.
4월 17일 - 유고슬라비아, 독일에 항복.
4월 17일 - 독일, 이탈리아가 실패했던 그리스에 침공.
4월 23일 - 그리스, 독일에 항복. 독일이 크레타 섬을 탈취함.
5월 5일 - 에티오피아, 이탈리아의 불법 점령(1936~1941)으로부터 해방되다.
5월 6일: 스탈린, 인민위원회의 의장에 취임.
5월 10일 - 독일 부총통 루돌프 헤스, 영국과 화평을 추진하기 위해 영국으로 비행기를 직접 몰고 날아가지만,
영국으로부터 전쟁 포로 취급을 당하고 체포됨.
6월 22일 - 독일, 사상 최대의 원정군으로 소련을 기습공격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모스크바 공략은 추위 때문에 실패함.
8월 12일 - 미국과 영국 정상 회담, 대서양 헌장 발표.
9월 24일 - 소련 등 15개국, 지지 표명.
12월 7일 - 소련, 독일에 반격. 일본, 진주만 공습.
12월 9일 - 중화민국, 독일과 이탈리아에 선전 포고.
12월 11일 -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에 전쟁 선포.
12월 25일 - 일본, 영국령 홍콩 점령.
[편집] 1942년
1월 1일 - 연합국 26개국, 워싱턴에서 공동 선언 조인.
1월 20일 - 독일, 반제회의에서 유대인을 학살하기로 결정.
2월 15일 - 일본, 싱가포르를 점령하여 ‘쇼난’(昭南)으로 개명하다.
4월 18일 - 미 육군 항공대, 일본 본토를 기습·폭격하는 이른바 둘리틀 공습을 감행.
6월 5일 - 일본,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에게 대패. 이 해전 이후, 미국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주도권을 잡았다.
6월 30일 - 에르빈 롬멜이 지휘하는 독일-이탈리아군이 엘 알라메인에 도착.
8월 16일 - 미·영·소 지도자, 모스크바 회담. 소련, 제2 전선 요구.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토오치 작전) 결정.
9월 13일 - 독일6군, 스탈린그라드 시내 돌입.
11월 8일 -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11월 11일 - 독일, 비시 정권하의 비점령 프랑스 지역을 점령 지역으로 편입시켜 튀론 항을 제외한 프랑스 전 영토를 점령.
[편집] 1943년
1월 25일 - 미국과 영국,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무조건 항복 원칙’ 발표.
1월 31일 -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 승리. <== 쥬드로 주연의 "Enemy at the Gate"
=> 독일군의 기세가 꺽이게 되는 계기
5월 13일 - 북아프리카의 독일-이탈리아군 항복.
6월 10일 - 코민테른 해산.
7월 3일 -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쿠르스크 전투 개시.
7월 10일 - 미국과 영국 연합군, 시칠리아 섬 상륙.
7월 25일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무솔리니를 체포하고, 바돌리오 장군을 내각으로 삼다.
7월 23일 - 쿠르스크에서 소련군 승리 독일군 동부 전선 주도권 상실.
8월 24일 - 미·영 지도자, 퀘벡 회담. 제2 전선 결정.
9월 3일 - 이탈리아, 연합국에 항복.
9월 8일 - 독일, 로마 점령.
9월 15일 - 무솔리니 구출, 파시스트 공화 정부(살로 공화국) 수립.
10월 13일 - 국왕과 바돌리오 내각, 남쪽으로 도피. 독일에 선전 포고.
10월 19일 -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국 외상 회의.
11월 26일 - 미국·영국·중국 카이로 회담. 한국 독립 결의.
11월 28일 - 미국·영국·소련, 테헤란 회담. 소련의 대일 참전 토의.
12월 1일 - 카이로 선언 발표.
[편집] 1944년
1월 20일 - 소련, 레닌그라드 해방.
5월 13일 - 독일군, 크림 반도에서 후퇴.
6월 4일 - 이탈리아 전선의 미국 및 영국군, 로마 해방.
6월 6일 - 역사상 최대의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돌입.
6월 22일 - 소련군 바그라티온 작전 개시.
7월 20일 - 독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발생. <== 탐크루즈 주연의 "
7월 22일 - 연합국 45개국, 브레턴우즈 협정을 맺고, IMF와 IBRD 설치.
8월 1일 -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 발발.
8월 19일 - 바그라티온 작전 성공, 독일 중부집단군 괴멸.
8월 24일 - 루마니아, 연합군에 항복하고 동맹국의 지위를 포기함.
8월 25일 - 연합군, 파리 해방. 루마니아, 독일에 선전 포고.
8월 26일 - 불가리아, 동맹국에 빠져나와 중립 선언. 훗날, 소련이 선전 포고를 하자 곧바로 항복함.
9월 2일 - 핀란드, 독일과 국교 단절.
9월 9일 - 샤를 드골, 임시정부 수립. 불가리아, 조국전선정부 수립.
9월 10일 - 불가리아, 연합국으로 전환. 독일에 선전 포고.
9월 19일 - 핀란드, 영국 및 소련과 휴전 협정 조인.
10월 9일 - 영국과 소련의 지도자, 모스크바 회담. 발칸 분할에 대해 의견 일치.
10월 11일 - 헝가리의 국가원수인 미클로시 호르티가 나치 독일에 의해 감금당함.
12월 10일 - 소련군과 티토의 군대가 베오그라드를 해방.
12월 31일 - 헝가리, 독일에 선전 포고.
[편집] 1945년
1월 17일 - 소련군, 바르샤바 해방.
2월 11일 - 미·영·소 지도자, 얄타 회담.
4월 12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죽자 해리 S.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
4월 13일 - 소련군, 빈 해방.
4월 22일 - 소련군, 베를린 돌입.
4월 28일 - 무솔리니 총살됨.
4월 30일 - 히틀러 자살. 칼 되니츠가 아돌프 히틀러의 유언에 따라 총통직을 계승.
5월 07일 - 독일군, 서방 연합군에 항복. 이때 덴마크 해방.
5월 08일 - 독일군, 소련군에 항복.
6월 23일 - 오키나와, 미군에 점령됨.
6월 26일 - 국제 연합 헌장 조인.
7월 17일 - 포츠담 회담.
7월 27일 - 영국에서 애틀리 내각이 성립.
8월 06일 - 미국,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 투하.
8월 08일 - 소련, 일본에 선전 포고.
8월 09일 - 미국,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투하.
8월 12일 - 소련, 한국 동북부 도시 나진, 웅기를 점령.
8월 14일 - 소련군, 한국 동북부 도시 청진 상륙 감행.
8월 15일 - 히로히토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다.
한국은 이날을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다.
[편집] 주석
↑ 샤를 드골이 영국으로 망명하여 세운 임시정부이다. 비시 프랑스와 구분하기 위해 자유 프랑스로 표기하였다.
↑ 비시 프랑스는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정부로 나치에 협조한 것 때문에 추축국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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