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철학] 호모 노트쿠스 (Homo Notecus) : 기록하는 인간

by loveson 2022. 9. 28.

"아빠, 그건 왜 적어놓는거야?"

   


아들의 젖니가 하나씩 빠질때마다, 그날의 모습을 고이 찍어 PC에 저장해두었던 사진을 찾아보면서,
젖니 하나하나마다의 빠진 날짜, 뽑힌 위치, 그리고 빠진순서 등 내용을 메모하고있는데,
어느샌가 아들이 불쑥 나타나서 물어본다.
   
순간 엄청 놀라고 당황했다.
왜냐면, 지금껏 빠졌던 젖니를 모두 보관하고 있는데, 아들은 첫번째 젖니가 없는줄 알고있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에게 마찬가지겠지만, 젖니가 처음 빠진 이벤트는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하다.
순수한 나이에 아름다운 기억을 한조각이라도 더 만들어 주고 싶어서, 
아이와 함께 배개 밑에 젖니를 놔두고 아이가 잠든동안 Tooth Fairy 가 젖니를 가져가고 대신 깜짝선물을 놔두기를 같이 기도했었다.
   
아직도 순수한 아들은 그날을 기억하며 당연히 요정이 자신의 첫번째 젖니를 가져간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라도 들켜서 아들의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이 와장창 깨질까봐 걱정스러워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아들이 물어본것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 아들의 젖니 뽑은 날짜를 왜 적었던걸까? "
" 지금 왜 이 글을 적고 있는 것일까? "
" 왜 인간은 기록을 하는 것일까? "

 

         

오랜시간에 걸친 심오한 철학적 사고까지 필요없이도 단순한 논리로 충분히 답을 구할수 있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이 부족하고 매순간 미련이 남게되어 시간에 대해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은 무정하게도 그저 흐른다. 속수무책이다.
들판에 물길을 막아 가두는 것과는 달리 시간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
시간을 붙잡을수 없으니, 그래서 인간은 매순간의 기억을 잡아두기로했다.
그게 바로 기록이다.

놓치고 싶지 않은 그 당시의 생각, 그 순간의 느낌과 감정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적어놓기만 하면,
언제라도 꺼내어 읽어볼 수 있고, 그렇게 기록을 읽다보면 마치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시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즉, 언제나까지나 그 순간의 시간을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이다.

   

         

 

File:Homo Notecus.jpg - Wikimedia Commons

 

commons.wikimedia.org

(Wikipedia에 새로운 학명으로 등재 시도해봤으나 개인 의견이라고 삭제처리됨. 그래서 그림만 등록함.)
    

     

   
아들이 얼마전 초등 1학년때 본인이 썼던 그림일기를 꺼내 읽어보더니 너무 재밌다고 했었다.
나도 가끔씩 아내와 둘이서 아이의 어릴적 영상과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아들도 일기를 쓸 당시에는 훗날 자신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며 흐뭇해 할 장면을 상상 못했던것 처럼,
나와 아내도 어린 아들의 모습을 촬영 할때에는 그 자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그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때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되돌려보면서 행복했었던 그 순간의 느낌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고, 또 추억여행을 하는 동안 만큼은 그때의 시간속에 영원히 머물고 있는것 같은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되니, 점점 더 "기록의 위대함"에 매료되는것 같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너무너무 아쉽고 그립기 때문에,
내 기억 속 매 순간의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한 순간이라도 더 기록해두기 위해 오늘도 난 쉼없이 셔텨를 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