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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철학] 감사, 겸손의 다른 말

by loveson 2022. 9. 21.

아들에 들려주고 싶은 삶의 철학과 교훈


유전적인 영향으로 내 어머니는 간이 안좋으셨다. 내가 군복무시절에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사형선고"까지 받으실만큼 많이 아프셨다. 급하게 휴가를 받아 부리나케 달려와 어머니를 마주하기전 가족들이 진정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노랗게 변해버린 눈과 두꺼비 처럼 볼록해진 어머니의 배를 보고는 제대로 얼굴을 마주할수가 없어서 뛰쳐나와 화장실 구석에서 꺽꺽 거리며 들썩이는 어깨로 눈물을 가리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켰다.

그렇게 다가올 슬픔의 시간을 준비하며 가족들 모두 절망에 빠졌다. 그런데 이후 어머니는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와 가족들의 응원, 그리고 의료진의 기술적 도움 때문이었는지, "장례식장으로 가는 급행열차"라는 대학병원의 입원병동에서 기적처럼 빠져나오셨다. 지금은 물론 매끼 한움큼의 약을 드시지만, 매일 산에 오르실만큼 건강해지셨고, 다시금 가족에겐 행복이 찾아왔다.  

     

기적과도 같은 생환의 경험때문인지, 병원생활을 하실때도 그러셨지만 지금도 어머니는 매번 의사를 만날때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을 연거푸하시며, 의료진에게 최대한의 감사함을 표현하신다. 그리고, 증세가 호전되어 갈수록 그 고마움의 표현은 점점 더 커지고 많아졌다.

그런데, 변덕스럽고 간사한 인간이라서 그런걸까?
처음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과 행동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달라지는 마음처럼, 어둡고 절망적이던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니 조금씩 삐딱한 시선이 생기면서 그런 어머니의 과한 감사표현에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병을 얻은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환자라는 이유로 병원문턱에 다다르는 순간부터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하시는것 같아 맘이 불편했다.

더욱이, 어머니의 경우에는, 몇시간에 걸친 어려운 수술등의 직접적 치료도 없이, 그저 바른 식습관과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습관 유지를 실천하여 병세가 호전되었음에도, 그 모든 공덕을 의사에게 돌리며 연거푸 감사의 말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가 못마땅했다.
(물론 어머니의 기적적인 호전 사례는 의사도 놀라워했지만, 그 원인과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기적을 소재로 하는 TV프로그램에 어머니 얘기를 제보해볼까 심각하게 검토도 해봤었다.)

하지만, 굳이 좋은일에, 어머니의 행복한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싶지 않아서 내 마음을 말씀드리진 않았다. 더군다나 어머니의 건강이 좋아지셔서 나또한 즐거우니 그깟 불편한 마음은 금세 잊혀졌다.



원래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퇴원후 기력을 회복하시고나서 조용히 동네 자그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어머니도 그렇게 활달한 성격이 아니시라서 처음엔 있는듯 없는듯 조용히만 다니셨는데, 다행히 친절하고 좋은분들을 만나서 점점더 열심히 다니시더니, 봉사활동도 하시고, 평소엔 동네 뒷산에도 함께 오르시며, 즐겁게 교회를 다니게 되셨다.
병원에 입원하셨던 예전을 돌이켜보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지금의 활기찬 모습의 어머니를 뵈니, 교회가, 또 동네분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러던중, 어느날 감사헌금을 내신다는 얘길 들었다.
교회 다니기 시작하실때부터 목사님의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한 자리값과 맛난 점심까지 드신 값으로 주일헌금을 하신다는 말씀은 들었지만, 감사헌금까지 내신다는 말씀에 맘이 좀 찜찜해졌다. 특히, 나에게 어떤것이라도 좋은일이 생긴걸 들으시면 꼭 감사헌금을 내신다고 하셨다.

내가 열심히 살아서, 매사 신중히 잘해서 그런거라고 강력히 주장하며 말려도, 그저 못들은척 헌금을 내셨다.
문득, 병원에서 감사함에 연신 고개를 숙이시던 모습이 다시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아 그 뒤에도 몇번 헌금을 고사하시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때마다 너무나 단호하고 강경하게 거부하셔서 어쩔수가 없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게 되었다.
아들이 어릴적, 좀더 예의 바르고 겸손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며 여러가지 방안을 궁리하다가, 본디 맘에도 없던 신앙생활을 시작해볼까 도전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과학으로 다 설명할수 없는 세상 만물의 이치를 어떤 큰 위대한 존재가 계획하고 만든것이니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으로서 겸손하고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였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어느 누구를 마주치던 공손히 머리숙여 인사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예의바른 마음도 커지게 될것이고, 결과로 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자라게 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때, 그제서야 불현듯 어머니의 행동이 떠올랐다.
내가 아들을 교회에 보내어 범사에 감사하라 가르치고 싶었던것처럼, 어머니는 이미 모든것에 감사하고 계셨던 것이다.
본디 심성이 착하고 여린 어머니라서 당신에게 찾아온 기적이라는 행운을 누군가에게 감사를 하지 않으면 부담스럽고 불편하셨던게 아닐까?
어쩌면, 절망스런 입원생활의 끝에 불행한 결과를 맞이했다면 지금은 보지 못했을, 누리지 못했을 그 큰 기쁨에 대하여 작은 도움이라도 나눠준 어느 누군가에게라도 그저 감사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당신이 삶에 대한 의지로 병마와 싸워 이겨낸 자랑스러움 보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고 나눠준 도움이 더 크고 값진 것임이라 생각하는 어머니의 겸손한 마음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고 존경스러웠다.

   

훗날,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내 아이가 전해듣고,
내가 느끼고 깨닳았던 "겸손"의 미덕을 되새겨주길 바란다.

"감사하라, 그럼 겸손해질것이고,
겸손하라, 하면 많은이가 존경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