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철학] 부부, 균형과 조화의 결정체 : 부부싸움 화해를 위한 글

by loveson 2022. 9. 23.

아들에 들려주고 싶은 삶의 철학과 교훈
 
나의 초등학생 시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또하나의 장면은 바로 엄마의 커피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맞이한 한가로운 주말오후. 어머니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미숫가루 색깔의 뜨거운 무언가를 준비하시고, 에이X 크래커를 살짝 찍어드셨다.
     

  
당시엔 항상 배가 고픈나이였던건지, 아니면 어머니가 드시는건 모든게 맛있어 보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께 찰싹 달라붙어 맛을 보여달라며 졸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것이 마치 독약이라도 되는듯 먹으면 큰일 난다며 "어른들이 마시는 음료"를 맛보는걸 막으셨다.

하지만, 호기심에 굶주린 혈기충만 초등학생을 어찌 말리실수가 있으시랴.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의문스런 액체에 에이X를 찍었다가 한입 베어먹은 순간!!

마치 영화 "라따뚜이"에서 독설을 날리는 비평가 "안톤 이고"가 라따뚜이를 한입 베어물고는 과거의 시간여행으로 빠져들었던 순간처럼 나는 충격적인 맛을 느꼈다. 너무 맛있었다.
(그냥 초콜릿의 강렬한 달달함만이 아닌 뭔가 더 부드럽고 은은한 달콤함이였을 것이다)

이후부터 어머니의 주말오후 커피타임엔 무조건 끼어들어서 어머니껄 훔쳐 마셨고(엄청 귀찮으셨을꺼다), 안되면 몰래 혼자서라도 달달한 엄마표 커피를 따라 만들어 먹곤했다.

그런데 신기한건, 내가 매번 만들어 먹을땐 어머니 커피와 같은 맛은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몇번이고 어머니가 커피를 만드실 때 자세히 들여다봤지만 특별히 다른 무언가를 더 넣으시지도 않았는데 그 레시피는 흉내낼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가끔씩 주변 사람들의 대화속에서 221, 231, 244... 와 같은 다양한 저마다의 비법을 엿듣고 따라해봤지만 예전 어머니의 커피 맛은 찾지 못했고, 그렇게 미궁속에 갇힌 어머니의 비밀 레시피는 잊혀져갔다.

그 후, 언젠가 혜성처럼 등장한 "믹스커피"가 다시금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만들때의 쉽고 간편함 때문에도 놀랐지만, 아련한 기억속의 그 맛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수많은 연구원들이 비법을 찾기위해 원정대를 보내어 고군분투한 끝에 어머니의 비밀레시피를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새롭게 출시 될수록 더 풍미가 우수해졌고, 이제는 감히 전세계인의 입맛도 사로잡을 만큼 맛이 훌륭했다.

솔직히,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때의 맛을 정확히 알수 없다. 그저 맛있었다는 기억만 남아있을뿐이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특별한 레시피는 원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각자의 기호와 입맛에 맞춤하는 비율로 균형을 맞춘 단순한 조리법이 있었을 뿐이다.

커피란,
향기롭지만 강렬한 쓴맛의 원두와
이와 싸워 이겨낼만큼 중독성있게 달달한 설탕,
그리고 이 두가지의 날카로움을 부드럽게 덮어주는 프림.
이들 세가지 재료들의 오묘한 조합이다.

재밌는건, 너무도 독특하고 강렬한 이 세가지 재료들을 자칫 잘못된 비율로 맞추면 쓰디쓰거나 텁텁한 탕약이 되지만, 황금비율로 균형을 잘 맞춘다면 아름답고 조화로운 맛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다는것이다.

* 조합 : Combination,
* 균형 : Balance, 한쪽으로 치우침없이 고른상태
* 조화 : Harmony, 서로 어긋나거나 부딪침없이 고르게 잘 어울림

즉, 어머니 커피맛의 비밀이 내게 일깨워주는 삶의 지혜는 "균형과 조화"인 것이다.



인생에 고락이 있듯이, 부부생활중에서도 좋고 나쁜 시간이 찾아온다.
무난한 인생항해의 흐름과 바이오 리듬의 안정으로 편안한 심기일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넘쳐나지만,
복잡한 문제에 대한 고민? 의견충돌? 컨디션의 난조? 등 불편한 감정이 쌓였을땐 서로에 대한 날선 비난과 갈등이 생긴다.

특별히, 배려와 사랑이 가장 충만한 신혼시절에 주말부부 생활을 했었다.
주말에 집에 오게되면 아내 혼자서 독수공방 고생한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어머니를 닮아 원래 잠이 없었기에 나는 주말아침 일찍부터 주간대청소를 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데, 그런 소란스러운 상황에도 아내는 태평스레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처음에야 힘든 노동을 감당하는 내 수고로움에 대해 생색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청소를 하다보면 신혼의 달달함은 없어지고, 무관심함에 대한 서운함에 슬슬 짜증과 울화가 쌓이다가 결국 폭발하여 아내를 깨워 다툼을 했었다.
      

              
신이 인간을 빚어낼때 굽기조절을 실패하여 흑인과 백인이 탄생되었다는 우스겟 소리처럼,
인간을 창조하는 과정에 감정과 재능, 의식과 욕구등의 다양한 조미료를 섞었다고 가정했을때, 나는 신께서 아내를 빚어내시는중에 실수를 하셔서 조미료 중에 수면욕만 왕창 쏟아부어 잠만 자는 것이라고 비난했었고,
이에 질세라, 아내는 나의 예민함과 정리, 청결에 대한 지나친 욕구를 비난하며 맞섰다.
(정리와 청결함에 대한 나의 욕구는 질병에 대한 염려와 건강에 대한 욕구로써, 이는 후천적이고 환경적인 영향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치통처럼 끔찍한 고통과 통증에 대한 여러경험을 통해 통증 회피욕구가 늘어난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전혀 공감해주지 않았다.)
      
이후의 결혼생활에서도 심각한 위기를 겪을만큼 힘들거나 위험한 상황은 없었지만, 여러가지 다양하고 사소한 이유들로 빈번히 다툼을 했었다. 그래도, 항상 감정이 누그러들면 오래 지나지 않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고 사과하고 용서하며 갈등 상황을 잘 헤쳐나갔다.

그런데 신기한건, 갈등상황이 생길때마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해해서 재차 다툼이 발생되지 않을법 한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상황에서 동일한 이유로 또 다툼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결혼생활 중에 다사다난했던 사건과 시간을 보내면서,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는 과정에 정도 많이 쌓였겠지만, 서로에 대한 답답한 마음 역시 커졌고, 어느순간부터는 그러려니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갈등 상황을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제는 경험도 많이 쌓였고, 나이가 들어서인지 젊은 시절의 날선 내 성격들이 무뎌지며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여유가 많이 생겨서 갈등상황이 다툼으로 번져가지 않도록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상대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지금도 간간히 다툼은 생긴다.

하지만, 이제와 곰곰히 생각해보니,
수많은 대화와 화해의 시간을 공유했음에도 계속 다툼이 발생했던건, 자신만의 입장과 생각을 잣대로 상대의 부족함을 비난했을뿐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였던것 같다.

어쩌면, 신이 인간을 빚어낼때 행한 실수(?) 때문에 각자의 다양성이 존재할수 밖에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절대적인 기준인양 상대를 바라보게되면 상대가 부족하거나 과하다고 여겨질것이고, 그럼 자연스레 갈등과 다툼이 깊어지게 되는것이다.

부부라는건,
그저 한지붕아래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게 아니라, 한쪽의 부족하거나 과한 부분을 다른쪽의 과하거나 부족함으로 채우고 덜어내어 균형을 찾고 조화를 만들어 평화롭게 살아가기위해 인간이 찾아낸 비법인 것이다.

만약, 어제 배우자와 다툼후 냉전중이라면, 당장 믹스커피 한잔 만들어 마시면서
예전 "어머니 커피맛의 비밀"이 나에게 일깨워 줬던 균형과 조화의 지혜를 떠올려보고 먼저 사과의 문자를 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