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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아빠의 도시락

by loveson 2022. 10. 20.

몇일전, 아들을 학원에 보내고 와이프랑 오붓한 저녁식사 데이트를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부부 둘만의 달콤한 시간에도 이야기 주제는 아들의 일상으로 채워진다.
  
계절이 바뀌어 선선하고 화창한 날씨의 가을이 되니 학교에서 야외체험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듣기만해도 얼마나 설레이는 "소풍"인가...
어릴때 학교밖으로 나가는 사실만으로도 잠을 설쳤지만, 그보다 더 나를 설레이게 했던건 당연히 김밥 도시락이었다.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으로 똘똘뭉쳐져, 입안에 들어가면 향기롭게 버무려져 자연스레 입꼬리를 올리게 만들었던...

  
그 추억들을 떠올리려는 찰나, 와이프는 이런 행복함에 찬물을 끼얹듯 주문도시락 얘길 꺼냈다.
아들의 소풍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몇몇 엄마들이 집근처 김밥집에 이미 주문을 넣었다며, 자기도 김밥집에 주문넣어야 하는데 늦었을까봐 걱정스럽단 얘기를 꺼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말도안된다고, 정성스레 싸줘야한다고 했다. 아니면 내가 직접 싼다고 했다.
  
아들의 소풍날 아침,  결국 내가 6시에 일어나서 직접 당근도 썰고, 고기도 굽고, 밥도 볶아서 속을 만들고
유부에 싸서 유부초밥 도시락을 준비했다.
(물론 와이프가 옆에서 마~~니 도와 줬지만)
  
사랑받는 존경스러운 아빠의 기억을 아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몇일전 인터넷 검색하다가 봤던걸 떠올리면서 도시락의 데코를 시도했다.




흰색 치즈가 없어서 퀄리티가 현저히 낮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완성품을 보니 제법 그럴싸 했다.


(나중에 아들은 입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게 젤 맘에 들었단다.) 

도시락을 꽁꽁 싼뒤에야 아들을 깨워서 준비를 시켰다.
치즈 자투리, 김 부스러기를 보고 아들이 뭐냐고 물었지만, 나중에 알게될꺼라고만 해줬다.
벌써 눈치가 백이십단쯤 되는 아들이라, 대충 뭔지 알것같다고 했다.
이제 다 큰 어른이랑 대화하는듯 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슬슬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맛나게 먹었는지,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고 많이 행복했을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내가 어릴땐 어머니께선 훨씬 더 큰 김밥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 주셨었다. 

  

고작 조그만 도시락통에 유부초밥 몇개를 담는데도 와이프랑 그 난리법석을 떨며 힘들었는데, 색색깔의 재료를 빠짐없이 채워넣으시면서도 형의 도시락과 아침용 김밥까지 만드셨던걸 기억해보니 정말 그땐 어머니께서 너무 일이 많고 힘드셨을꺼 같았다.
그래서 안무문자를 보내는데 계속 울컥울컥 했다.

자식 낳고 키워봐야 부모 속 안다는 옛말이 하나 틀린게 없다.

* PS : 저녁에 슬쩍 아들에게 물어보니, 기대했던것 만큼의 기분좋은 찬사는 없어서 서운했지만,

          분명히 아들의 기억에 행복한 사진한장이 추가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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